최근 보건복지부가 “기본이 튼튼한 복지강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내건 업무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계획에는 소득·의료·돌봄을 중심으로 한 복지 정책 전반을 재정비하고,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 전환에 대응해 복지의 역할을 확장하겠다는 방향이 담겼습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누리는 통합돌봄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통합돌봄의 전국 시행입니다. 2025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부터는 노인과 장애인이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지역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연계해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본격화됩니다. 방문의료, 재가요양, 일상생활 지원이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계획 아래 제공되는 구조입니다.
이는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정책적 선언에 가깝습니다. 병원 퇴원 이후 돌봄 공백, 고령자 1인 가구의 생활 안전 문제를 제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서비스 확대라기보다, 돌봄 전달체계 자체를 지역 기반으로 재편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소득과 의료, 기본생활 안전망의 재정비
소득보장 영역에서는 노인과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제도 손질이 이어집니다. 노령연금 감액 기준을 완화하고, 기초연금의 부부 감액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이 추진됩니다. 노인일자리는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되며, 공익성과 안전이 필요한 영역에는 우선 배치하는 방식이 도입됩니다.
의료비 부담 완화도 중요한 축입니다.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이 대폭 완화되고, 간병비 부담 역시 제도적으로 낮아질 예정입니다. 특히 의료급여 제도 도입 이후 오랫동안 지적돼 온 ‘가족 소득 때문에 지원에서 탈락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손보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의료 접근성의 기준을 가족이 아닌 개인으로 옮기겠다는 방향성이 읽힙니다.
지역·필수·공공의료, 접근성 중심으로 재편
의료 정책은 ‘어디에서 살든 치료받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구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역의료 강화, 필수의료 인력 확충, 응급의료체계 개선이 동시에 추진됩니다. 권역별 외상센터와 심뇌혈관질환 치료 역량을 강화하고, 중증·응급환자의 이송과 전원 과정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도 도입됩니다.
의대 정원 조정,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 논의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의료 인력 문제를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서 일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결이 다릅니다.
복지에도 AI가 들어온다
이번 업무계획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는 보건·복지 영역 전반에 AI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점입니다. 의료 취약지 원격협진, 응급환자 이송 최적화, 복지 상담과 급여 심사 자동화까지 적용 범위가 넓습니다.
특히 복지 분야에서는 신청주의의 한계를 넘겠다는 의지가 드러납니다. AI 기반 상담과 행정 시스템을 통해, 신청하지 못해 놓치는 복지에서 자동으로 연결되는 복지로 전환하려는 시도입니다. 이는 복지의 접근성을 제도보다 기술로 보완하겠다는 방향 전환입니다.
복지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다
특히 이번 업무계획은 단기적인 지원 확대보다, 복지가 작동하는 구조 자체를 손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끕니다. 돌봄은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는 공급 논리보다 접근성 중심으로, 소득보장은 사각지대 해소를 목표로 정책 설계가 조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복지를 ‘특정 계층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삶의 기본을 지탱하는 공공 인프라로 바라보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결론
이번 보건복지부 업무계획은 새로운 제도를 대거 추가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제도들을 연결하고 정비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복지를 특별한 지원이 아닌, 누구나 기대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일관되게 관통합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서 체감되기까지는 전달체계 정비와 인력 확보라는 현실적인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정책의 방향은 분명해졌지만, 그 방향이 삶의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는 실행 단계에서 판가름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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